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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김해영 연재時] 바람이 불었소

김해영 시인 haeyoung55@hotmail.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

   

최종수정 : 2011-03-12 11:47

간밤엔
바람이 불었소
미친 듯이 불었소
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이
바람은 그렇게 불었소


헛된 아집의 각질과
빛 바랜 이름을
명찰처럼 달고 있는
나무 둥치
채찍처럼 후려치는
매바람을
맨 몸으로 견디어야만 했소

속이 꽉 찬 참나무처럼
반듯하고
튼실하게
살아왔다고
허세 부리던
삶의 쭉쟁이를
아프게 아프게 훑어내야 했소

광풍이 헤집고 간 숲은
고요하오
……
가만,
귀 기울여 보오
바람의 발자국이 또 다가오는 듯하오


<시작메모>
간밤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. 굳은 아집과 헛된 소망을 훑어내는 아픔을 아프게 아프게 겪는다.
잠시 바람이 멎었다. 그러나 어디에선가 바람이 일어서 언젠가 다시 숲을 향해 불어오겠지. 또 다시 맨몸으로 맞아야 한다. 

 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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